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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댄스2024에 참여하는 국내외 예술가, 시댄스를 만드는 사무국 식구들, 시댄스를 찾아준 관객분들 등 축제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길고 짧은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서면과 사진, 때로는 영상으로 전하는 이야기, 이런저런 인터뷰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폐막일인 9월 14일까지 순차적으로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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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인터뷰

<야만인들>의 안무가 리나 리모사니(Lina Limosani)와의 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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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인터뷰어-아델라: 제27회 서울세계무용축제 총괄 프로듀서

(우) 인터뷰이-리나: 리나 리모사니(Lina Limosani) / 리모사니 프로젝트의 프로듀서 겸 안무자 겸 연출


아델라: 리나, 잘 지냈어요?

리나: 조금 피곤한데 괜찮아요. 이제 리허설 마지막 단계라 집중하고 있어요.

아델라: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줘서 고마워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이지만, 해외에 이미 만들어진 공연을 발표할 때 작품의 맥락이 제거된 채, 혹은 새로운 맥락을 찾지 못한 채 그저 공연되는 경우가 잦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오늘은 작품 자체에 대해 얘기하기보다 작품이 놓인 맥락을 알기 위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어떻게 작업이 시작됐나 같은.

리나: <야만인들>은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이고, 충돌하며 시작됐어요. 우리가 예술적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알고 싶었죠. 함께 읽은 시(poem)에 출발점이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야만인을 환영하라" 같은 제목의 시였어요. 이 시는 우리가 세상을 정복했다 생각하며 상대방을, 타자를 야만인이라 여기지만 결국 우리 모두가 야만인이라고 얘기해요. 우리는 이 이야기를 추상적인 영역에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우리는 때로 극단적인 방식으로 타인을 대하고, 전 세계 많은 곳에서 그 방식은 매우 추악하고 끔찍하게 나타나요. 우리의 내재된 인간성이 그 원인이지만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죠. 이 작업은 우리 자신의 야만적인 본성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시작했어요. 인간의 본능적인 충동, 즉 싸우고 죽이는 본능이 어디에서 오는지요.

인간 존재의 기본적인 양육은, 먹고 생존하기 위해 상대를 죽이는 것이었어요. 우리가 ‘문명화(civilized)’되었다고 하지만, 본능을 억누르려는 과정에서 오히려 당혹스럽고 끔찍한 방식으로 본능이 분출되기도 해요. 융(Karl Jung)의 ‘그림자’ 개념과,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그 무언가를 들여다봤어요. 우리는 모두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다양한 상황에서 어떤 행위를 하는지 보면 어두운 면을 발견하게 돼요. 우리는 인간 존재로서의 우리 본성과 ‘문명화’라는 개념에 집중했어요. 인간은 이 세상에 안전하고 강력하며 구조화된, 그리고 발전된 세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짧은 순간의 무질서로 믿었던 것들이 사라지고 무너질 수 있어요. 이런 세계와 이 질문들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그 안에서 이 작품이 가진 대립적인 이미지가 나타났어요.

작품은 인간을 추악하고 끔찍한 생물로서, 곤충 같은 것으로 표현해요. 인간은 인간을 만들어내기도, 점령하기도, 먹어 치우기도 해요.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아름답고 섬세한 본성을 지니고 있어요. 일종의 음과 양 같아요. 우리가 문명화되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사이의 모호한 관계죠. 결국 하나는 다른 하나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우리는 야만과 문명 모두를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세상이 순수함만으로 가득하다면 좋을까요? 모르겠어요. 야만적인 것만으로 가득하면 좋을까요? 아마도 아니겠죠. 그래서 이 작품은 특정 문화와 상관없이 매우 보편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아델라: 그래서 한국의 관객들도 쉽게 공감하리라 생각해요. 그와중에 제가 의도를 벗어나는, 특수성을 강요하는 질문을 던지는 듯 하지만, 호주의 원주민 문화를 얘기하고 싶었어요. 호주에서 만들어진 많은 공연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인정하는 멘트(acknowledgement of land)로 시작하곤 하는데 이 문화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호주의 원주민 문화나 땅의 주인을 인정하는 문화 혹은 운동이 이 작품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까요?